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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농민이 가장 듣고 싶은 말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5-07 10:00:36
조회수
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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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 청년농부·전북순창

힘들게 농사지은 농산물이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는 오늘날, 농민들의 보람과 자부심은 오간 데 없어졌다. 땀 흘려 일한 보람을 얻지 못하고, 생산비라도 보상받기 위해 읍소해야 하는 고단함 속에서 ‘농사만 잘 지으면 얼마든지 귀하게 팔아주겠다’는 말은 얼마다 단비 같은 말인가.


큰 한파 없이 겨울이 지나서 올해는 금방 더워질 줄 알았는데, 균형을 찾으려는 자연의 섭리인지 예년에 비해 추운 봄을 보내고 있다. 작년에는 4월 초에 수확을 했다는 두릅이 올해는 열흘가량 늦게 첫 수확을 했다. 5월 초에는 거의 끝물이라는데, 이제 곁순 수확을 막 시작했다.

내가 있는 순창은 두릅으로 유명하다. 4월 초부터 한 달여간 반짝 수확하는 두릅은 순창의 대표작물이 되어 전국 생산물량의 7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제주도에서 감귤 보기가 흔하듯, 순창에서는 집 근처나 밭 근처 비탈진 곳곳마다 심겨진 두릅을 볼 수 있다. 밭에 야생동물 피해가 나거나 재배하던 작물 가격이 좋지 않으면 두릅을 심는다. 임야를 사서 산등성이에 두릅을 심기도 하고, 논에 두둑을 높게 하고 두릅을 심기도 한다.

두릅은 시원할 때 작업한다는 게 참 좋다. 가시가 많아 찔리지 않기 위해 옷을 여러 겹 껴입는데, 새벽에 작업할 때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딱 좋은 온도에서 작업을 할 수 있다. 또 일찍 소득이 난다는 것도 좋다. 45월은 다른 작물들을 심기 시작하면서 한창 농자재비를 많이 투입해야 하는 시기인 만큼 이때 두릅을 팔아 버는 돈은 참 요긴하게 쓰인다.

이런 순창의 효자 품목인 두릅밭을 나도 조금 빌리게 됐다. 마을 어른의 소개로 200평 조금 못 되는 두릅밭을 빌려서 새벽마다 열심히 수확하고 있다. 두릅 덕분에 새롭게 10통을 받아 키우기 시작한 양봉의 투자금을 메워가고 있다. 사실 순창에서 너무 무분별하게 두릅을 심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해왔는데, 순창 두릅의 수혜자가 되어 올해 첫 농산물 판매고를 올리자니 참 다양한 생각이 든다.

3년 전 순창군 귀농귀촌지원센터에서 교육팀장으로 일할 때 순창의 대표 작물 중 일부를 선정해 실습하고 배워보는 2박3일 귀농 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다. 그때 제일 먼저 교육했던 작물이 바로 두릅이었다. 낮에는 농가에 가서 두릅밭을 정리하는 일을 돕고, 저녁에는 두릅 판매를 담당하는 농협 직원의 강의를 들었다. 그때 들었던 말을 나는 아직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당시에도 두릅밭이 너무 크게 늘어나고 있어 순창에서는 두릅가격이 곧 곤두박질할 것이라는 걱정 섞인 이야기가 많이 들리던 때였다. 그때 농협 직원은 올해 두릅의 판매량과 시기별 경락가 등을 표로 정리해 보여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매년 두릅 생산량이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올해도 중반에는 물량이 몰리면서 잠깐 가격이 하락하는 듯 했지만, 대형마트 등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면서 전체 기간 중 평균 가격은 오히려 작년보다 더 올랐습니다. 중간에 다른 대형마트에서도 거래를 제안했지만 요구하는 만큼의 물량을 안정적으로 맞출 수 없어 하지 못했습니다. 두릅 생산이 늘어난다는 걱정이 있지만, 저희는 지금보다 재배 농가가 더 많이 늘어나도 다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바야흐로 우리는 생산과잉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농민들이 무엇을 심으려 해도, 이미 다 과잉 생산됐다는 말을 듣는다. 재배가 늘어나도 얼마든지 다 받아주겠다는 말은 농촌에 내려와서, 아니 내려오기 전부터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다.

청년들은 농지은행에서 논을 빌려 쌀농사를 짓고 싶어도 타 작물 재배조건이 붙는 땅만 빌릴 수 있고, 한때 순창의 소득 작목이었다는 오미자, 복분자는 지역별로 할당된 양만 농협에서 수매를 받는다. 하우스에서 에너지와 비용을 많이 들여 키우는 과채류도, 밭에서 고되게 노동해서 얻어지는 노지 채소류도 매년 가격 하락으로 인한 산지 폐기를 피할 수 없다. 순창의 대표 소득 작물이라는 10대 작물 중 몇몇 작물은 폐업 지원 대상 작목으로 전락했다.

결국 남들도 다 하는 작물들 속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남들이 안 하는 작물을 찾아 도박 같은 농사를 짓거나, 남들보다 특출 난 기술을 가지고 훨씬 더 좋은 품질의 농산물을 만들거나, 대규모의 기계화 영농을 통해 생산비를 낮춰 손익분기점을 낮추는 수밖에는 없다. 이 세 가지 방법 모두 영농 초보에 자본 없는 나로서는 엄두조차 내지 못할 방법들이다.

힘들게 농사지은 농산물이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는 오늘날, 농민들의 보람과 자부심은 오간 데 없어졌다. 땀 흘려 일한 보람을 얻지 못하고, 생산비라도 보상받기 위해 읍소해야 하는 고단함 속에서 ‘농사만 잘 지으면 얼마든지 귀하게 팔아주겠다’는 말은 얼마다 단비 같은 말인가.

바라건대 농촌에 이런 품목들이 계속 늘어났으면 좋겠다. 두릅이 순창의 주산지가 되기까지, 참두릅을 선발 육성해 농가에 보급하고, 재배법을 확립하고, 소비를 촉진시켰던 수많은 연구원, 공무원, 유통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다른 농산물들도 민과 관이 찰떡같이 협력해서 잘 팔아주기 위한 연구를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 같은 어수룩한 초보 농민도 다음 농사를 꿈꿔볼 수 있는 소득 작물들이 더 많아지기를, 무엇보다 농민을 위해 잘 팔아주는 농산물 유통의 기틀이 다져지기를 바라본다.


출처 : http://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8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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